발레와 비보이는 외적으로 보았을 때 춤의 조합이 상상 안 갈 만큼 너무나 다른 색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둘의 춤을 조화시킨 뮤지컬과 영화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 ‘스텝업(2006)’ 이 손꼽힌다. 이처럼 두 개의 춤은 정반대처럼 보이지만 서로 호흡을 맞춘다면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다. 

그럼 이제부터 발레와 비보이에 대해 알아보자.  

출처 : 이미지 투데이 (발레와 비보이는 서로 다르지만 조화시킨다면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다.)

발레
발레는 ‘춤을 추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ballare’에서 유래하였으며 음악, 무대장치, 팬터마임 등을 갖추어서 특정한 주제의 이야기를 종합적으로 표현하며 일반적으로 다리의 포지션에 기초한 클래식 댄스의 정형적인 기법을 사용하는 무용이다.  발레 안무가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특별한 분위기를 조성하며, 일련의 춤을 서로 연결하거나 무용수들을 추상적인 개체로 이용하기도 한다.

서양에서의 발레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궁전에서 유래하였다. 당시에는 무언극과 가면극의 춤을 구성하여 기하학적인 형태로 무용수가 모여서 춤을 췄으며 발리, 사교댄스, 극적인 무대 무용, 즉흥적인 무대 무용 이 4가지 춤을 혼합하여 췄다.

19세기 초에 유럽에 낭만주의 정신이 유행을 했으며 이것이 발레에 영향을 주어 1830년대부터 로맨틱 발레가 성행하게 되었다. 

음악이나 문화, 회화에서 낭만주의를 꽃피운 위대한 예술가가 있었던 것처럼 발레에서도 마리 탈리오니가 도약이나 삐루엣 같은 기술들을 크게 발전시켰다. 이때 파니 엘슬러가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로맨틱 발레는 더욱 풍부한 내용을 갖추게 되었다.

반면 우리나라의 발레는 8.15 광복 이전에 최승희와 조택원이 대표적인 무용수로 활동 했다. 8.15 광복을 맞은 이후에는 전국적인 단일 조직체로 ‘조선무용예술협회’가 결성되었으며 협회가 결성이 된 후 국도 극장에서 창립 공연을 가져 18개 작품을 공연을 하였다. 하지만 성과가 크지 않다보니 협회 자체도 유명무실이었다.

이 당시 무용인들은 집단 운동 보다는 개인 공연으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특히 한동인이 이끄는 ‘서울 발레단’이 대표적이다. 1954년 8월, 광복 9주년을 기념하는 무용발표회가 서울에 개최가 되었다. 1년뒤인 1955년 6월에는 이화여대가 제 1회 전국 중고등학교 무용공연대회를 개최되었으며 1962년에는 서울예술고등학교에 무용과가 신설이 되었다. 또한 이후 1966년경부터는 서울의 각 대학에도 무용과가 생기게 되었다.

출처 : 이미지 투데이 (발레와 비보이는 서로 다르지만 조화시킨다면 아름다운 빛을 낼 수 있다.)

비보이
비보이란 힙합 문화에 심취한 사람, 일반적으로 브레이킹을 전문적으로 추는 남자를 말며 여성의 경우 비걸이라고 부른다. 전세계적으로 새로운 문화코드로 자리를 잡고 있으며 스포츠로서도 각광받고 있다. 

비보잉 또는 브레이킹은 1970년대 초반에 미국 뉴욕시 사우스브롱크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아프리카아메리칸들이 차지하던 뉴욕시 뒷골목에 히스패니계가 몰려들면서 세력 다툼이 벌어졌으나 이들 사이에서 비트가 강한 음악에 빠른 리듬이 입혀진 힙합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두 세력은 춤을 출 때만큼은 서로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하였다.

이들은 서로 상대 구역으로 몰아 상대의 기를 죽이기 위해 온갖 동작으로 묘기에 가까운 춤을 추며 시위를 벌인다. 이것이 바로 비보이들의 경연대회에서 배들(Battle)이라는 명칭이 붙게 되었다. 비보잉은 폭력의 공포 속에서 생겨났지만 평화와 안식을 갈구하고 폭력과 가난에서 벗어나려는 자유 의지가 담긴 춤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세계적으로 우수한 비보이들이 활동하는 나라는 한국, 독일, 일본,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있으며 그 중에서 한국이 최고 수준의 국가로 인정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독일의 ‘배틀 오브 더 이어’, 영국의 ‘유케이 비보이 챔피언십’, 미국의 ‘프리스타일 세션’과 국가를 옮기면서 개최하는 세계 5대 비보이 배틀에서 잇따라 석권하며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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