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을 수 없는 감정, 우울 속으로

평소 우울한 일이 있으면 지금의 감정보다 더 짙은 무언가로 자신을 달래려 하는 습관을 지닌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필자도 그러한 사람이다. 그러고 나면 지금의 이 감정보다 훨씬 우울한 것은 주위에 많고, 지금 자신에게 드는 감정은 별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게 된다.

만약 필자처럼 우울함을 극복해야 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아닌, 그 속에 감정을 묻어두고 서서히 잊어나가는 사람들이라면 인간의 끝없는 고독과 공허함을 다룬 영화 ‘토니 타키타니’를 추천한다.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포스터)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포스터)

다시 혼자가 되는 두려움

‘토니 타키타니’는 주인공 토니의 감정적 변화가 주가 되는 영화이다. 어릴 적부터 외롭다는 것이란 인생의 어떤 전제조건이 될 만큼 당연하다고 여겼던 토니는 아내 에이코를 만나 ‘사랑’이란 감정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외로움이 아닌 다른 세상’을 알려주고 그의 마음속 공백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그녀가 죽음으로써 자신이 살고 있던 원래 세상을 알게 된 그는 행복하지 못한 것에 고통을 느끼며 다시금 텅 빈 고독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색감을 통해 전하는 주인공의 감정

이 작품은 많은 단편소설을 영화화한 감독인 ‘이치카와 준’이 맡아 제작된 그의 대표작이자 감독의 색깔을 잘 드러낸 영화라고 볼 수 있다. 보통 소설을 영화화했을 때 원작의 분위기를 잘 살리지 못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에 상당한 도전정신이 뒤따르는데,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색감을 통해 드러내고자 하는 분위기를 굉장히 잘 살렸다. 공허하고 외로움이 가득한 내용에 맞게 채도와 대비를 확 낮춰 마치 오래된 필름을 돌려 보는 것 같은 기분을 줌과 동시에 서늘한 기분까지 느껴지며 깊은 물속에 서서히 가라앉아 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연출이 벗어나려고 해도 벗어나지지 않는 우울함을 표현하며 시청자가 토니의 감정에 쉽게 동화될 수 있게 한 포인트가 되었다.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스틸컷)

극의 몰입을 더하는 배우들의 연기

작중 배우들의 연기력도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가 될 정도로 ‘미야자와 리에’(에이코/히사코)와 ‘오가타 이세이’(토니 타키타니)는 심오하고 어려운 주제를 설득력 있게 끌어갔다. 특히 1인 2역으로 토니의 죽은 부인인 에이코와 그녀와 닮은 여인인 히사코 역을 맡은 ‘미야자와 리에’의 연기가 아주 인상 깊다.

‘미야자와 리에’의 다른 작들을 살펴보면 ‘종이달’, ‘행복목욕탕’, ‘인간실격’ 등이 있는데, 그녀가 연기한 대부분의 작품이 그러하듯 역할에 완전히 녹아들어 “그녀가 이 역을 맡지 않았더라면 누가 할 수 있었을까?”를 생각하게 만든다.

옷을 모으는 것을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는 여자인 에이코와 토니가 찾아다니던 에이코와 옷의 치수가 일치할 뿐인 여자, 히사코. 이 두 사람의 비슷하지만 다른 경계선을 표현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섬세하고 풍부한 감정선 표현으로 완벽한 1인 2역을 선보인다.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스틸컷)
출처: 네이버 영화(토니 타키타니 스틸컷)

사실 주인공 토니를 맡은 ‘오가타 이세이’는 이전 작품에서 딱히 인상 깊다는 생각을 해본 적 없었다. 그러나 토니와 한 몸이 된 그의 연기는 이 배우의 재발견이 되었다. 작중 토니가 아내가 죽고 나서 그녀가 끔찍이 집착했던 옷을 버리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을 토니의 심리적인 부분과 연관 지어 해석한다면 그가 얼마나 함축적으로 장면을 잘 표현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살아가다 보면 내 안에 무언가 텅 비어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내가 그동안 이루었던 모든 것들이 사실 허상에 불과하다고 느낄 때, 욕심이 이루 말할 수 없어 그것의 빈자리를 채웠을 때 아직 더 부족해 보이는 공허함. 토니와 아내가 보여주는 행동들, 사실 우리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지 않은가?

우울이란 본래 드러나지 않았을 뿐 모두에게 내재되어 있다. 그런 감정을 단순하게 표현한 다른 작들과는 다르게 우울을 통해 인간의 본성 자체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부정하려 해도 끌리고 계속 찾아보게 될, 또 그럴 가치가 있는 영화다.


김혜윤 객원기자

* 김혜윤 객원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에서 언론을 전공 중인 예비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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