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tvN 예능 조립식 가족 홈페이지.
출처 : tvN 예능 조립식 가족 홈페이지.

‘결혼을 굳이 해야 할까?’ 성인이 되면 많이들 하게 되는 질문이다. ‘혼자’아니면 ‘결혼’이라는 양자택일만을 강요하는 현 사회의 법과 제도 내에서, 결혼은 인생의 필수 과정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하지만 꼭 결혼을 거쳐야만 함께 살 수 있는 걸까? 피가 섞여야만 가족인 걸까? ‘함께 생활하는 삶’ 자체가 목적이 되는 관계는 왜 법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걸까?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해가는 현시대의 많은 이들이 이러한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의문들의 해답은 ‘생활동반자법’에서 찾을 수 있다. 

핵가족도 이제는 옛말이다. 현 한국 사회 내 가족의 의미와 형태는 변화하고 있다. 2021년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비친족 가구수는 47만 2660가구로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많았다. 비친족 가구란 ‘시설 등에 집단으로 거주하는 가구를 제외한 일반 가구 가운데 친족이 아닌 5인 이하 구성원으로 이뤄진 가구’를 의미한다. 비친족 가구원수는 101만 5100명으로, 2016년(58만 3438명)과 비교하면 5년 만에 74%나 급증했다. 더불어 한부모 가족, 여성가구주 가족, 조손 가족, 다문화 가족 등 기존 ‘정상가족’과는 다른 형태의 가족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이렇듯 이성애 부부와 자녀로 이루어진 핵가족만을 ‘이상적이고 자연스러운 가족’으로 전제하는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서 탈피해 점점 더 다양한 형태의 가족 공동체가 등장하고 있다. 2020년 여가부의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 “혼인·혈연에 무관하게 생계와 주거를 공유하면 가족”이라고 66.3%가 동의했으며, “결혼하지 않아도 함께 살 수 있다”고 67%가 응답했다. 이렇듯 변화하는 가족 형태에 따라 사회 인식도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제도와 정책은 제자리걸음이다. 현 한국 사회의 가족 관련 제도는 가족 형태의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고 있어, 그로 인한 문제를 법 테두리 바깥의 가족 구성원들이 떠안고 있는 현실이다. 비친족 가구는 수술 동의서 보호자 사인 권한 및 시신 인수와 장례 권한이 미부여되고, 장례 휴가 등 가족돌봄휴직과 휴가 제도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위기상황 대처 문제를 겪는다. 복지혜택에서도 배제되고 있는데, 위탁 가정의 경우 가족 정책을 통한 상담이나 부모 교육 등 가족 지원 서비스 지원이 불가하며, 노인 사실혼이나 비혼 동거인은 노인에게 필요한 의료, 사회복지 서비스 이용에 제약을 받는다. 

2013년 10월 31일, 40년 동안 동거해 온 두 여성의 삶과 죽음에 대한 기사가 보도됐다. A씨와 B씨는 40년간 함께 살던 중 B씨가 암 질병으로 입원하게 됐고, B씨의 아파트 명의와 사망 보험금을 A씨가 수령할 수 있도록 재산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러나 갑자기 B씨의 조카가 나타나 상속권을 주장하며 접근을 막아 A씨는 간병도 못하게 됐고, 함께 살던 아파트에서 쫓겨났으며, 절도죄로 고발당하는 등 온갖 수모를 당했다. 

결국 평생 동거해 온 상대방의 임종도 지켜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뒤늦게 상대방의 사망소식을 접하고, 자신이 살던 아파트로 돌아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단순 동창을 넘어 인생의 동반자였던 그녀들의 관계는 사회적으로, 법적으로 아무런 인정도, 보호도 받지 못했다. 이처럼 현존하는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차별하고 고립시키는 현 제도 대신, 다양한 공동체를 포용하고 보호하는 ‘생활동반자법’을 도입해야 한다.

‘생활동반자법’은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니더라도 ‘1명과 동거하며 부양하고 협조하는 관계를 맺고 있는 성인’을 생활동반자 관계라고 정의하고, 법률적 보호와 권리 및 의무를 갖도록 하는 제도다. 성년이 된 사람은 당사자 간의 합의에 따라 관계 형성이 가능하며, 피성년후견인은 성년후견인의 동의를 받아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가정법원 등에 당사자 쌍방이 연서한 서면으로 신고함으로써 효력이 생긴다. 

혼인 중에 있거나 다른 생활동반자관계 중에 있는 사람은 중복으로 형성이 불가하고, 미성년자인 경우에도 무효사유가 된다. 동거, 부양, 협조 의무와 일상 가사대리권, 재산 약정과 변경 등 재산상 효력이 발생하며, 사회보장, 세제혜택, 가정폭력에 대한 특별보호 등 여러 혜택과 보호가 적용된다. 해소 사유 및 절차는 이혼에 비해 훨씬 자유롭고, 이혼과 마찬가지로 재산분할청구권 및 손해배상 청구권 문제가 발생한다.

이미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와 미국 일부 주 등 서구권 국가들은 생활동반자법과 유사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스웨덴의 함께 산다는 의미의 ‘삼보’라는 제도는 동거 파트너가 법적인 보호자에 준하는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준다. 프랑스는 1999년 시민연대계약 혹은 공동생활약정의 약자인 ‘팍스(PACS)’라는 제도를 만들어 두 성인 간의 계약을 통해 결혼한 부부와 유사한 권리와 의무를 갖게 했다. 동거 가구에도 가정 수당을 주고 동거 관계에 태어난 아이들에 대한 차별을 철저히 금지해, 혼외 출산율이 36.3%에서 62.2%까지 급등했고, 합계출산율 역시 1990년 1.76명에서 2009년 2.0명으로 반등했다. 이러한 프랑스의 선례는, 저출산에 대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큰 시사점을 안겨준다.

다시 말해 가족 가치와 형태는 이미 변화했지만, 그에 따른 제도와 정책은 부재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비친족 가구는 현실에서 경제적 문제, 위기상황 대처 문제 및 복지혜택 등 다양한 어려움을 겪는다. 또한 그들의 관계는 사회적·법적으로 아무런 인정도,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배제되고 차별받는다. 

즉, ‘정상’을 고집하는 한국 사회는 가족 형태에 따른 변화를 받아들이고 사회적으로 인정해 모든 가족 공동체가 법 테두리 안에서 안전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이에 유연성과 포용성을 반영한 ‘생활동반자법’을 도입해 개인의 가족 구성 선택을 제도로써 보장하고 존중해야 한다. 나아가 유사한 제도를 통해 가족 다양성을 수용하면서 출산율 반등까지 성공한 선례도 존재하는 상황에서, 망설일 이유는 더더욱 없다. 


김채연 객원기자
* 김채연 객원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에서 언론을 전공 중인 예비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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