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네이버 영화(영화 ‘애프터 양’의 한 장면)

기억을 '복기'하면서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키는 '따뜻한 SF 영화'
몇 년 전, 할머니가 큰 수술을 버텨낸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고 한동안은 실감이 나질 않았다. 금방이라도 다시 만나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더 이상 할머니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체감되자 가슴을 조여오는 통증과 함께 눈물이 났다. 

할머니의 부재가 익숙해졌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어떤 삶을 살아오신 걸까?', '우리 가족과 있는 시간이 정말 행복했을까?', '이럴 줄 알았으면 살아생전 할머니를 인터뷰해 볼 걸'. 이런저런 후회가 들 때 이 영화를 보게 되었고 큰 위로를 받았다.

<애프터 양>은 가족이나 다름없었던 안드로이드 '양'이 작동을 멈춘 후의 이야기로, 양을 수리하려다 우연히 메모리 뱅크(기억 저장소)를 발견하면서 벌어지는 내용이다. 메모리 뱅크를 통해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양의 모습은 무엇일까? 메모리 뱅크 속 기억들은, 우리에게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던 걸까? 이 작품은 2022년에 개봉해 선댄스영화제에 초청될 만큼 꽤 주목받았던 독립영화이다. ‘따뜻한 SF영화’라는 평은 <애프터 양>의 모든 걸 설명해 준다.

기억을 복기하다
이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메모리 뱅크 속 양의 기억을 하나둘 복기하면서 가족들이 양을 안드로이드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점이다. 맨 처음 양이 작동을 멈췄을 때, 가족들은 사람이 아닌 제품으로 생각했기에 수리하면 끝날 문제라고 여겼다. 그러나 주인공이 밤을 새워가며 양의 기억을 본 뒤로는 여운이 남는 듯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이 장면은 관객들의 기억에 남는 명장면 중 하나가 된다. 주인공 스스로는 힘든 삶을 산 줄 알았지만 양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족들의 모습은 정말로 행복하고 찬란했기 때문이다. 소중한 줄 모르고 지나쳤던 순간들을 양은 모두 기억하고 있었다.

가족을 상기시키다
양의 기억 단편을 따라가는 과정은 가족의 의미를 상기시킨다. 비록 눈을 한 번 깜빡이는 그 찰나의 순간이 한 기억의 전부이지만, 모이고 모여 하나의 빛나는 메모리 행성을 이루고 있었다. 성장하는 그 모든 순간을 저장한 양의 메모리 뱅크, 이를 모두 확인한 주인공은 이를 통해 가족의 존재와 의미를 되짚어본다.

우리는 지나간 시간들을 추억하고, 쉽게 후회한다. 그 이유는, 지나쳤던 순간들을 똑같이 재연해 되돌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기억하고 싶은 부분만 기억한다. 좋은 기억은 쉽게 지나치고 그렇지 않으면 다시 곱씹게 된다. 그러나 양의 기억은 그 어떤 왜곡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모든 순간이 담겨있다.

죽음을 받아들이는 과정
이 작품의 스토리 흐름은 실제로 사람이 이별을 맞이하고 나서 밟는 수순과 유사하다. 처음에는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하다가 그 빈자리가 점점 크게 느껴지면서 상실감과 슬픔 등 여러 부정적인 감정들을 한 번에 느낀다. 한껏 슬퍼하고 나면 사라진 사람을 기록했던 사진과 영상을 겨우 볼 수 있게 되는데, 그 행복했던 순간을 함께 이야기하며 아픔은 점차 나아진다. 

물론 죽은 사람의 기억을 다 알 순 없고, 함께했던 모든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점은 영화와 다르다. 하지만 실제로 떠나간 가족의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공유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가족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며 삶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을 때, 재미와 감동이 스며드는 영화 <애프터 양>을 추천한다.


이유진 객원기자
* 이유진 객원기자는 한림대학교 미디어스쿨에서 언론을 전공 중인 예비언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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