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돌봄의 탈가정화 속 장기간 시설에 거주하는 경우 많아
공통적으로 가족 울타리에서 버려졌다는 생각
시설에 거주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려 노력
단절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연결된 것은 가족
시설 거주 노인과 가족의 유대감 지속 위한 지원 필요

출처: 숭실대학교(숭실대학교 전경)
출처: 숭실대학교(숭실대학교 전경)

노인들에게 있어 요양시설 거주경험에 대해 확인한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논문에서는 특히 새로운 환경 속에서 체념하며 죽는 날만 기다리는 것이 아닌 ‘찾고 싶은 나의 삶’을 갈망하며 새로운 위안을 찾는 과정이라는 게 ‘노인 요양시설 거주의 본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숭실대학교 사회복지학부 허준수 교수 연구팀이 ‘한국콘텐츠학회 논문지’ 21권 5호에 발표한 논문 <노인요양시설 노인의 시설 거주경험에 관한 연구>에 담겨 있다.

논문에 따르면 노인돌봄을 두고 ‘가족이 책임져야 한다’는 비율의 경우 1998년 89.9%에서 2018년 26.7%로 급격하게 감소했고, 사회적 돌봄 책임을 주장하는 비율은 54%로 확대된 상황이다. 정부 또한 이러한 사회적 요구에 맞춰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를 시행했으며, 2020년 6월 기준 노인장기요양시설 수는 총 5,628개소, 시설거주 노인은 193,298명으로 크게 증가했다. 전체 장기요양등급 인정 노인의 24.1%는 집과 가정을 떠나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기 위해서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따라 장기요양등급판정위원회로부터 고령이나 치매, 뇌혈관성질환, 그리고 파킨슨병 등 노인성 만성질환(Long-term Illness)으로 인한 심신 장애로 6개월 이상 혼자서 일상생활을 수행하기 어렵다고 인정되어 장기요양등급을 판정받은 자 중에서 시설급여를 선택”해야 한다.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의 경우 공통적으로 노인성 만성질환과 함께 인지 및 신체적 기능 손상으로 일상생활 활동에 있어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다. 시설 입소 기준을 살펴보면 장기요양 1~2등급 노인은 별도의 요건 없으며, 3~5등급자의 경우 불가피하다는 것이 인정되면 시설 입소가 가능하다. 이 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중증 노인부터 일정 부분의 도움이 필요한 경증 노인, 치매와 비치매 노인 등 신체적·정신적 건강 수준의 차이가 큰 노인들이 한 시설 내에서 단체로 생활하게 된다.

2020년 6월말 기준 전체 노인장기요양시설 거주 노인의 약 70% 가량이 경증노인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노인의 시설거주 기간은 조사 이후 꾸준히 장기화 추세를 보이며 2019년 기준 시설거주 노인의 시설거주 기간은 평균 2.8년, 그리고 5년 이상 거주 노인의 비율도 15.7%로 나타났다.

그러나 기존문헌에 따르면 시설거주 노인 대부분이 시설 선택 및 입소 시기 결정에 있어 대부분 보호자인 자녀와 가족에 의해 일방적으로 결정되는 현실도 존재한다. 노인돌봄의 탈가정화로 인해 노인의 의사보다 부양 불가 상황이나 부양 부담 및 스트레스로 인한 가족의 결정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결국 노인의 거주지가 시설로 이동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국 사회적으로 노인돌봄에 있어 돌봄 의존성 증가, 부양자 부담 증가, 가족 내 돌봄 기능 약화 같은 부분을 비롯해 개인·가족·사회·제도적 요인의 영향으로 많은 노인들이 집과 가정을 떠나 시설에서 장기간 혹은 죽음에 이르기까지 살아가는 ‘노인의 탈가정화’ 현상이 급속하게 진행되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연구자들은 시설거주 노인의 생활에 대한 사회적 관심 증가와 함께 노인요양시설에 거주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인 삶의 질 향상과 수준 높은 돌봄서비스 제공에 대한 논의가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연구자들은 “노인요양시설 노인의 시설 거주경험은 어떠하며, 그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바탕으로 노인요양시설 거주 노인의 질적 돌봄을 위한 가족과 사회의 역할을 증대시킬 제도적 및 실천적 방안 등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를 위해 질적연구 중 하나인 현상학적(Phenomenological) 연구방법을 선택했다.

조사는 서울, 인천, 경기 지역 내 위치한 노인요양 시설 4곳에 거주하는 65세 이상의 노인 중 6개월 이상 시설에서 거주하며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이 양호한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연구 참여자는 총 8명으로 여성 6명, 남성 2명이며, 70대 초반 1명, 80대 6명, 90대 1명이다. 이들의 거주 기간은 최소 9개월에서 최장 11년이었다.

자료의 경우 직접 면담을 바탕으로 하는 심층면담과 참여관찰을 통해 수집됐다. 2019년 7월부터 2020년 1월까지 7개월 동안 진행됐다. 면담은 일상생활과 최근 근황에 대해 묻는 질문으로 시작해 대화의 흐름에 맞춰 노인요양시설 거주경험에 대해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연구 주제와 관련된 개방적 질문(Open Question)을 사용하여 시설거주 선택 이유, 입소 전·후 생활 모습, 그리고 시설 거주경험 등에 대해서 묻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분석결과 노인요양시설 거주경험에 대해서 총 33개 의미가 도출됐고, 14개의 하위 구성요소가 확인됐다. 그리고 이를 통합해 구성한 결과 ‘무너진 나의 존재’, ‘낯선 환경 속에 던져진 삶’, ‘불편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관계’, ‘찾고 싶은 나의 삶’ 등의 네 가지 상위 요소가 확인됐다.

"몸 불편해지니까 요양원으로 몸만 들어와 밥만 얻어먹고 살고 있는 겨. 죽은 거나 다름없지. 늙은이 오래 살면 아들자식들 다 고생이지"

첫 번째로 확인된 ‘무너진 나의 존재’에서는 ▲ 병들어 부담만 주는 존재, ▲ 잃어버린 내 자리, ▲ 사라진 내 삶의 흔적들 등의 세 가지 의미가 중심이었으며, 요약하자면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존재가 모두 무너지는 위기를 경험 속에서 ‘병들고 아픈 노인’, ‘자식에게 부담만 주는 쓸모없는 노인’이 돼 홀로 남게 됐음을 실감하며, ‘요양원 거주 노인이 됨’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나와 ‘가족으로부터 버려진 것’이라는 생각을 공통적으로 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돌아갈 곳이 없어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내 것’, 그리고 ‘지인과의 관계 단절’을 경험하고 있었다.

“여기서 외롭게 아무도 없이 아무 의미도 없이 사는 거야. 죽을 날만 기다리고. 다 끝나고 여기 와서 신세 지고 있는 거지”

두 번째, ‘낯선 환경 속에 던져진 삶’에서는 크게 ▲ 변화된 현실 속 아쉬움, ▲ 안전을 위해 잃은 자유, ▲ 같이 있어도 혼자, ▲ 고립된 삶 등의 네 가지가 관찰됐는데, “돌봄 문제가 발생한 뒤 시설에 거주할 수밖에 없던 자신과 가족의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며 변화된 시대를 받아들이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현실에 대한 아쉬움’, '편안함 속 허전함', '갇혀 지내는 삶', ‘자율성을 잃은 삶', ‘타의에 의한 관계의 고립’을 느끼고 있었다.

“할아버지 한 분이 참 나한테 잘했어. 나는 처음에 들어가서. 그래가지고 잘 지냈는데. 그 할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돌아가셨어”

세 번째로, ‘불편함과 고마움이 공존하는 새로운 관계’의 경우 제한된 주변인과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며, 자신의 이야기와 마음을 나누고 의지가 되어주는 의미 있는 관계를 간절히 원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때 ▲ 힘들지만 의지되는 동료노인, ▲ 불편해도 고마운 시설종사자, ▲ 의미와 무의미의 경계, ▲ 타인의 지지, ▲ 멀어진 거리보다 더 멀어진 가족 등의 다섯 가지 하위 의미가 도출됐다.

“괘씸하다가도. 내가 이왕에 있을 바에는 내가 내 마음 편안하게 있자. 그래야만 우리 자식들도 편안해지겠지”

네 번째로, ‘찾고 싶은 나의 삶’에서는 ▲ 찾고 싶은 가족, ▲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한 노력, ▲ 내 힘을 잃지 않기 위한 노력, ▲ 현재 삶 받아들이기 등의 네 가지가 나타났다. 노인들에게 있어 시설 입소 후 단절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연결된 끈은 가족이며,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가족의 지지’였다고 한다. 노인들은 시설에서 생활하며 “자신의 마음속 감정들 사이에서 매일 힘겨운 줄다리기를 하며 스스로 ‘가족과 마음으로 화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상황이었다.

이 연구에서 주목할 부분은 “참여자들이 본인의 지난 삶에 관해 물을 때 가장 먼저 시작하는 이야기이며 동시에 가장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모두 자신의 삶을 함께해 온 ‘가족’에 관한 것”이었다는 내용이다. 이는 새로운 환경 속에서 체념 상태에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노력하지만 주변의 지지가 가장 필요한 시기에 혼자 힘으로 현재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찾기도, 긍정적인 삶을 펼치기도 어려운 노인들에게 결국 ‘가족’이 어떻게 관계를 이어나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결과를 토대로 연구팀은 다음의 함의를 제시했다. 정리하자면 ▲ 노인 및 자녀세대에 대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홍보, ▲ 지역사회 내 적절한 사회적 돌봄을 받으며 삶을 지속할 수 있는 생활 조건의 마련, ▲ 시설입소 전 노인 및 가족을 대상으로 준비 프로그램을 제공, ▲ 시설거주 노인과 가족의 유대감을 지속 및 가족들의 지지와 참여 독려 위한 참여 프로그램을 개발·활성화, ▲ 개별적 심리·사회적 욕구를 고려한 세분화된 서비스, ▲ 지역사회자원 연계 프로그램 개발 등이 있다.

지금의 연구를 평가하자면 ‘초고령사회’의 진입을 눈앞에 둔 상황이며 동시에 전통적인 가족 돌봄이 무너지고 사회적 책임이 강조되는 분위기 속에서 시의적절한 논의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이가 들고 돌봄이 필요한 시점에 요양시설에 거주하는 선택이 개인·사회적으로 ‘당연한’ 상황 속에서 참여와 관찰을 통해 현실적인 이야기를 기록한 것만으로도 높이 평가할만 하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다가올 미래이며, 언젠가 ‘노인’이 될 우리에게 더 많은 생각과 고민을 할 수 있도록 해준 것만으로도 ‘좋은연구’라고 할 수 있다.

끝으로 이 연구에서 확인된 의미들을 엮어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해본다.

노인들은 시설에서 살아가게 되면서 스스로의 존재가 무너지고 병이 들어 부담이 되며 잃어버리고 사라진 삶의 흔적을 되짚어 보며 낯설고 새로운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 때 함께하는 새로운 사람들의 경우 불편함과 고마움이 공존하기도, 의지가 되고 고맙지만 가족과 멀어진 상황은 힘들기만 하다. 특히 단절된 상황 속에서 가족의 지지를 기다리며 감정을 다스리고 마음으로 가족과 화해하기 위해 노력하는 노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푸름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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