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70-80년대
부흥의 90년를 넘어서다

※ 본 기획기사는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상대적 소수 계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과연 게임 그 자체가 폭력, 살인 등 각종 강력사건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게임의 기원, 역사 및 발전 과정 등을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 비디오게임 관련 이미지

1970년대는 미국의 게임 이야기를 할 수 있겠다. 게임에 대한 관심이 조금만 있다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아타리’ 라는 회사를 빼놓고는 게임의 역사,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먼저 앞선 기사에서 다뤘듯이 아타리의 게임기가 세계최초의 게임기는 아니었다. 최초의 비디오게임 콘솔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임기는 마그나복스 사의 ‘오딧세이’라는 제품이었는데, 브라운 박스라는 프로토 타입의 제품을 가정용 비디오 게임기로 상용화한 것이다. 이후 놀런 부슈널이 게임 제작사인 아타리를 설립하고 상업적으로 대성공을 거둔 ‘퐁’이라는 게임을 출시하게 된다. 탁구를 모방한 이 게임은 당시 선풍적인 열기를 일으켰고 여러 사람들로 하여금 게임개발 산업에 뛰어들게 만들었다. 이러한 점에서 아타리가 게임업계에 기여한 점은 여러모로 대단히 컸다고 할 수 있다.

 

겜.알.못이 만드는 게임

돈에 눈이 멀어 게임계 몰락 위기까지

 

‘아타리쇼크’ 게임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전무후무한 대사건이었다. 간단하게 이야기 하자면 게임에 대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돈이 된다는 이유로 게임을 개발, 산업에 뛰어들어 저질 게임 및 콘솔을 양산하였고 이로 인해 소비자들의 불만이 쌓이고 쌓여 급기야 게임이라는 문화컨텐츠에 대한 신뢰는 물론이고 게임산업의 시장 기반 자체를 몰락 위기에 빠트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굳이 아타리쇼크 라고 부르는 이유는 소비자의 불만이 폭발하게 된 계기를 아타리 사의 ‘E.T’라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뉴멕시코에 5만여장의 E.T 게임 팩을 매립했다는 도시괴담이 떠돌았는데, 이후 한 다큐멘터리를 통해서 1천여장의 E.T팩을 찾게 되어 허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게임의 기사회생, 일본이 희망이고 꿈이었다

 

세가, 닌텐도라는 회사가 게임시장에 뛰어들면서 역사의 한편으로 사라지는가 싶었던 게임이라는 문화산업을 되살리게 된다. 1980년대 초반 지금도 걸작이라고 칭송받는 갤러그, 스트리트 파이터, 더블 드래곤 등이 발매가 되었으며 닌텐도의 카트리지 교환식 8비트 게임기 패미컴이 출시되었다. 아타리쇼크 이후 [게임은 해악] 이라는 인식에 맞서 아이들에게 친숙한 느낌이 들고 건전해보이는 인식을 심는 방향으로 접근한 닌텐도의 패미컴은 세컨드파티, 서드파티의 효율적인 운용과 관리 등 소프웨어 중시 사업진행으로 게임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키고자 노력한다. 이후 슈퍼마리오 브라더스, 젤다의 전설, 악마성 드라큐라, 록맨, 파이널 판타지 등 현재까지도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는 게임들이 출시되었다. 세가에서는 세가 마크III이라는 게임기를 출시했다. 패미콤에 비해 월등한 성능이었지만 닌텐도에 비해 서드파티 확장력, 시장 장악력이 부족했다. 하지만 이후 메가드라이브 라는 16비트 게임기를 출시, 북미시장의 과반수를 점유하는 등 닌텐도와 함께 게임시장의 양대산맥으로 군림하게 된다. 이 당시 북미에서는 아타리쇼크 이후 PC게임이 살아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비디오게임 관련 이미지)
출처 : 이미지투데이 (비디오게임 관련 이미지)

 

 

높아지는 게이머들의 눈, 요구

고사양의 게임기들이 등장하기 시작

 

90년에 들어서면서 게이머들의 눈은 높아지고 다양한 요구를 하게 된다. 8비트에서 16비트로, 다시 32비트로 게임기의 성능, 사양이 높아지면서 기존의 카트리지 교환 방식이 아닌 CD-ROM을 채택한 게임기들이 등장하게 됐는데,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을 선두로 세가에서는 세가세턴을 출시, 다소 늦은 90년대 후반 닌텐도에서는 한단계 더 업그레이드 된 닌텐도64를 출시한다. 이로 인해서 한동안 게임시장은 새턴 – 플스 – N64의 3강구도가 형성되었지만 가장 먼저 새턴이 뒤쳐지고 이후 기존의 카트리지 교환 방식을 고수하던 N64가 뒤쳐지면서 향후 몇 년 동안은 소니가 비디오게임 시장의 황태자로 군림하게 된다. 사양은 높았지만 카트리지 방식에서는 플레이스테이션이 보여주는 동영상 컷신 등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기에 닌텐도64의 패배는 시간문제였다는 평가도 있었다.

 

격동의 세월을 거치고 맞이한 90년대 후반

게임의 라이벌은 인터넷

90년대 후반에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는 인터넷은 그야말로 비디오게임의 라이벌, 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당시의 게이머는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게임 유저와 비디오게임을 즐기는 콘솔 유저로 나눌 수 있었다. 집에서 혼자(또는 몇몇) 게임을 즐기는 콘솔 유저는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즐기는 인터넷 온라인게임에 비해서 ‘아웃사이더’ 성향이 짙어지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취미라고 말하기도 민망할 정도의 사회적 인식이 퍼지게 된다. 비디오 게임을 즐기면 ‘오타쿠’라고 놀림을 받기도 하며 사회 생활을 힘들어 하는 사람이라고 보기도 했다. 하지만 게임의 발전으로 인해서 점차 사회적 인식이 변화하고 게임을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는 시기가 도래하게 된다.

 

다음 기사에서는 2000년 이후의 게임 산업에 대해 알아보고 향후 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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