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사고 발생 시 나오는 ‘게임중독’
게임에 대한 올바른 고찰이 필요

※ 본 기획기사는 게임이라는 취미를 가지고 있는 상대적 소수 계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과연 게임 그 자체가 폭력, 살인 등 각종 강력사건에 결정적 영향을 주는 것인지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게임의 기원, 역사 및 발전 과정 등을 살펴보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비디오게임 관련 이미지)
출처 : 이미지투데이 (비디오게임 관련 이미지)

리 삶의 여가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로 ‘영화’를 꼽을 수 있다. 연인들의 대표적인 데이트코스를 필두로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키워주는 매개체로도 영향을 주기도 하고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들에게는 과거의 향수에 젖게 만드는 묘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영화는 이미 하나의 예술로 인정을 받고 있는데, 묘한 것은 비디오게임(이후 게임으로 통칭) 역시 영화와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고 생각이 드는 것이다.

영화가 처음 ‘활동사진’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 앞에 나타나게 되었을 때, 단순히 여흥을 위한 소재로만 인식되었고 전혀 예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는 ‘사진’이라는 예술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지금은 종합예술로써 연기, 의상, 조명, 음악 등 다양한 부문에서 수상이 이루어지기까지 한다. 게임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단순 어린이들을 위한 놀잇감, 폭력을 조장하는 악의 근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이다. 그러나 최근의 게임을 살펴보면 영화에 못지 않은 다양한 부문에서 예술성을 드러내고 있고 사회적인 문제 등을 담고 있는 작품들도 있다. 이번 기획특집에서는 비디오게임의 역사와 발전 과정을 살펴보고 향후 게임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다뤄 보도록 하겠다.


- 게임과 비디오게임은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해당 기사에서의 게임은 비디오게임을 지칭하며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한 게임을 지칭한다.

 


1. 최초의 게임은 무엇인가
1950-1960년대의 게임

비디오게임을 즐겨하시거나 나이가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1972년 오락실용 아케이드 게임으로 발표된 아타리의 [PONG]을 최초의 게임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의 역사를 살펴보면 195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출처 - 이미지투데이 / 레이더 관련 이미지

1947년 미국의 TV기술자였던 토마스 골드스미스와 에슬 레이맨이라는 사람은 특허청에 ‘음극관 놀이장치’를 제출하게 되는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사용했던 레이더 디스플레이에서 착안한 장치로 전쟁을 주제로 하여 미사일을 여러 개의 손잡이로 제어, 목표를 맞추는 게임구동기였다. 이 게임기는 당시의 슈퍼컴이었던 NIMROD를 통해서 플레이가 가능하도록 만들어졌다. 다만 NIM은 디스플레이로 화면을 출력하는 방식이 아니었고 놀이의 성격보다는 일종의 군사훈련 성향이 강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음극관 놀이장치를 최초의 게임으로 보지는 않는다. 이후 시간이 흘러 1952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교수였던 알렉산더 더글러스가 박사 학위논문의 실례로 틱택토를 컴퓨터상으로 구현한 ‘3목두기’를 개발했지만 이 또한 연구목적이었기에 조용히 잊혀지게 되는 비운의 게임이다.

본격적으로 최초의 게임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작품은 1958년 겨울, 뉴욕의 원자력 연구시설이었던 브룩헤븐 국립연구소에서 나왔다. 윌리엄 히긴보섬은 연구소 방문객들을 위해서 당시로서는 첨단기술을 이용하여 ‘테니스 포 투’라는 게임을 만들어 오실로스코프에 간이 조종기를 연결하여 전시했다. 지금 기준에서는 단순히 자그마한 화면에 도트 점 몇 개가 돌아다니는 수준으로 게임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였지만 당시에는 매우 신선하고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하지만 연구소를 방문하는 주된 손님이 중년 이상의 남성이었고, 관계자가 아닌 일반인들에게는 1년에 2번 연구소 방문의 날에 공개되었기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테니스 포 투’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첫번째는 대중을 위해 만들어진 첫번째 게임은 상업적 목적성이 없었다는 점과 히긴보섬이 특허 신청을 하지 않아 오늘날까지 자유로운 인디게임 개발에 큰 공헌을 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겠다.


1960년이 넘어서면서 게임은 한단계 더 발전하는 사건을 겪게 된다. 1961년 미국 MIT에서 당시 약 12만달러의 PDP-1 컴퓨터를 접하게 된 스티브 러셀은 모니터를 갖춘 컴퓨터에 많은 흥미를 느꼈다. 컴퓨터의 성능을 테스트 해 볼 겸 게임을 제작하고자 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당시 스티브 러셀 본인이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던 에드워드 엘머 스미스의 작품에 영감을 받고 ‘우주전쟁’을 6개월여에 걸쳐 제작한다. ‘우주전쟁’은 2인용 대전 슈팅게임으로 점 모양의 미사일을 발사해서 서로를 맞추는 것이 주된 목적을 가진 게임이다. ‘우주전쟁’은 스티브 러셀과 그가 몸담고 있던 해커 동아리(TMRC – Tech Model Railroad Club)가 제작을 했는데 이후 해당 동아리에서는 이 작품을 바탕으로 게임을 계속 발전, 업데이트 해 나갔다. 주위에 몰린 수많은 구경꾼들을 위해서 모니터를 추가적으로 연결할 정도로 MIT에서 큰 인기를 얻은 ‘우주전쟁’은 일반 게이머들에게 널리 알려진 아타리 창업자 놀런 부슈널에게 큰 감명을 주고 본격적인 게임사업을 시작하게 하는 계기를 안겨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지고 있겠다.


다음 시간에는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는 1970년대를 시작으로 발전 과정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겠다.
 

저작권자 © 사이드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