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나무위키(Apple 제6대 최고경영자 스티븐 폴 잡스)
출처:나무위키(Apple 제6대 최고경영자 스티븐 폴 잡스)

10월 5일 사이드뷰 시선에 포착된 인물은 Apple의 공동 창업주 스티브 잡스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 주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인 어머니와 시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그의 친부모는 당시 결혼하지 않은 상태였고, 스티브 잡스의 생모인 조앤 시블은 아버지의 반대로 잔달리와 헤어진 상태였으므로 태어나자마자 아이를 입양 보내려 했습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는 친부모와 헤어져 폴 잡스와 클라라 잡스 부부에게 입양되었고, 이 불우한 과거는 잡스의 성격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잡스 부부는 스티브 잡스를 친아들처럼 생각하고 열심히 키웠으나, 어렸을 때 잡스는 부모 속을 많이 태우는 아이였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가 말하길 그는 딱히 천재성을 보이지는 않았다고합니다.

그는 학업적으로 천재는 아니었던 듯하고, 애초에 학교 공부 자체를 많이 하지 않았으며 다른 아이들이 고아라고 놀리는 바람에 친구들과 노는 대신 차고에서 안 쓰는 부품을 모아 뭔가를 만드는 걸 좋아했다고 합니다.

또한 아버지가 뛰어난 기술자라 아버지가 무엇이든 잘 만드는 것을 보고 감탄하여 아버지에게 기술을 배우기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스티브 잡스의 사업가 인생은 고등학교 학창 시절 전자공학에 관심을 가지면서 시작되었는데, 이렇다 할 꿈 없이 살던 그는 갑자기 전자공학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휴렛팩커드’에서 방과후 수업을 들었습니다.

그 후 1972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휴렛팩커드’에 여름 인턴으로 채용되어 그곳에서 Apple을 같이 세운 동업자인 스티브 워즈니악을 만납니다.

출처:나무위키(젊었을 적 스티브 잡스)
출처:나무위키(젊었을 적 스티브 잡스)

그 후 스티브 잡스는 1년 정도 문학과 철학에 심취해 있다가 우연한 기회로 ‘아타리’라는 게임회사에 게임 디자이너로 취직하게 됩니다.

아타리에서 초기 비디오 게임에 빠져버린 잡스는 컴퓨터에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곳에서 또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사표를 냅니다. 그때 워즈니악은 아직 HP에서 일하고 있었는데, 그가 운영하고 있던 ‘손수 컴퓨터 만들기 클럽’에 가입한 잡스는 컴퓨터에 완전히 빠져들었고, 그 후 워즈니악과 잡스는 의기투합하여 직접 컴퓨터 제작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1976년, Apple l이라는 PC 역사상 길이 남을 기종의 첫 번째 프로토타입을 첫 공개합니다.

이때 Apple l은 만족감을 주지 못했기에 그들은 Apple ll, Apple ll Plus 등 후속 모델들을 차례로 개발하고 크게 성공하며 막대한 명성과 부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에 스티브 잡스는 1981년, ‘아이엔시’지에 ‘비즈니스를 영원히 바꿔 놓은 인물’이라는 표제로 10월호에 소개되기까지 합니다.

이 시기에 ‘매킨토시’라는 팀이 꾸려지게 되는데, 1984년 출시된 매킨토스는 광고만큼이나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되어 스티브 잡스는 한층 더 유명세를 치르게 됩니다.

그러나 1984년 후반부터 매킨토시의 판매량이 아주 많이 감소합니다. 게다가 1983년 1월 출시된 ‘리사’ 역시 실패를 하게 되어 1980년대 세상에 선보인 Apple lll은 큰 실패를 맞이하게 됩니다.

또한 애플의 직원들은 과도한 업무 압박과 모욕적인 언사에 불만이 쌓여갔고, 스티브 잡스의 과민 행동은 그의 창업 동료 ‘워즈’까지 사직서를 제출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는 곧 직원들의 신뢰를 잃고 인망을 떨어뜨리게 됩니다.

그로 인해 이사회는 1985년 5월 스티브 잡스가 물러날 것을 최종 통보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CEO 자리에서 물러난 후 충격을 뒤로하고 3개월간의 유럽여행으로 휴식기를 갖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다시 한번 도전장을 내미는데, 이는 나중에 엄청난 성공을 가져다줄 ‘픽사’의 인수와 새로운 컴퓨터 회사 ‘넥스트’의 창업입니다.

출처:나무위키(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정문)
출처:나무위키(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정문)

그렇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스티브 잡스는 1989년 그의 기대와는 다르게 소비자에게 외면을 받은 넥스트의 컴퓨터에 의해 큰 적자와 재정난에 시달리게 됩니다.

하지만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을 지향했던 그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는 1995년 토이스토리를 제작해 전 세계적인 흥행을 거두게 됩니다.

반면 엄청난 에너지, 열정 그리고 창의성을 갖추었던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은 점점 추락하게 되고, 결국 애플은 그의 창업회사인 넥스트를 인수하기로 합의함으로써 사실상 스티브 잡스를 애플로 다시 불러들이게 됩니다.

그때부터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픽사를 함께 경영하며 ‘다른 것을 생각하라’라는 표어로 애플을 살릴 묘안을 고민하였고 1998년 5월 데스크 톱 컴퓨터 ‘아이맥’을 다시 선보이게 됩니다.

그렇게 스티브 잡스는 2000년 임시 CEO에서 정식 CEO로 복귀하게 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2005년 스탠퍼드 대학 졸업 연설에서 암 선고를 받은 후 느낀 깨달음을 연설했습니다.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그는 수술을 받고 기력을 회복한 후 다시 일에 매진합니다. 또한, 지속적이고 영속적인 회사를 위해 세련되고 초현대적인 애플 회사 설계도를 공개하는가 하면 그의 열정은 병세가 지속되는 와중에도 식을 줄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건강은 더 이상 그의 열정을 버텨내지 못하였고, 2011년 10월 5일 56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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